2018년 12월, 공주시 산성찬호길 19번지에 '박찬호 개념관'이 개관되었다.
박찬호 선소의 생가를 리모델링해 2층 7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박찬호 선수의 야구 스토리가 담긴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1층 전시실에는 박 선수의 초ㆍ중ㆍ고 시절 소장품을 비롯해 해외 124승 승리구 등 중요 소장품이 전시되었다.
2층 전시실에는 박 선수가 가장 오래 몸 담았던 LA다저스 구단 락커룸이 재현되며, 해외 구단 활동 시절 유니폼, 사인볼, 글러브, 배트 등이 전시되었다.
기념관 옆에 야구 체험관도 건립되어, 야구체험도 할 수 있다.
백제 웅진시대 역사문화의 진면모를 보고 듣고, 체험하면서 공주역사문화의 일면을
엿보고 나서 “산태극물태극” 계룡산과 금강과 같은 자연을 즐기고, 천년고찰의 향기를 맡아보는 것도 좋지만, 연계관광지로
지식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공주의 박물관 관람 추천 할만하다. 선사시대부터 근ㆍ현대역사와 자연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독특한 주제를 가지고 공주 여기저기에 우뚝우뚝 서있는 박물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자연, 교육의 역사, 선사시대,
아시아의 전통 민속자료와 민속극 등이 소개되고 있고, 세계의 희귀 동식물과 광물 등이 실물로 전시되고 있으며 들어갔다
나오면 산림박사가 될 수 있는 박물관 등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백제 웅진시대 역사문화의 진면모를 보고 듣고, 체험하면서 공주역사문화의 일면을
엿보고 나서 “산태극물태극” 계룡산과 금강과 같은 자연을 즐기고, 천년고찰의 향기를 맡아보는 것도 좋지만, 연계관광지로
지식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공주의 박물관 관람 추천 할만하다. 선사시대부터 근ㆍ현대역사와 자연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독특한 주제를 가지고 공주 여기저기에 우뚝우뚝 서있는 박물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자연, 교육의 역사, 선사시대,
아시아의 전통 민속자료와 민속극 등이 소개되고 있고, 세계의 희귀 동식물과 광물 등이 실물로 전시되고 있으며 들어갔다
나오면 산림박사가 될 수 있는 박물관 등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전해지는 설화에 의하면
산에서 고사리를 캐던 여인이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가보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에서 아이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나라에서 그 곳을 신성하다고 여겨 절을 짓게 하였다고 전한다.
대둔산은 논산시를 비롯해 금산군과 전라북도 완주군이 경계를 이루면서 넓게 분포되어
있다. 대둔산은 논산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고 계곡과 단풍으로 유명하다. 그중 군지계곡과 수락폭포는 소금강의 진수를
보여준다. 산은 날씨와 상관 없이 계절과 관계없이 그때 그 자리마다 아름답다는 것을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안다.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 대둔산은 더욱 그렇다. 대둔산 은 대개 기암괴석이 빼어나고 개발이 잘된 전북 운주 쪽을 떠올리게
되는데 대둔산은 충남의 논산과 금산, 전북의 완주 등 3개 시군에 속해 있다.
예로부터 논산은 삼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길목이었기에 황산벌전투는 우연이 아니었다. 계백장군 또한 이곳 황산벌에 오천결사대와 함께 잠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제와 신라 “우국충정”의 대 격전, 황산벌 전투 계백(階白 ; ? -660)은 백제의 장군이다.
554년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641년 의자왕(義滋王)의
즉위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제휴하면서 신라를 자주 공격했다. 그러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백제 두
나라를 노리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결국 660년(의자왕20)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의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죽기를 각오하고 출전하여 1인당 10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백제군은 결국
중과부적으로 패배하여 계백이 전사했다. 이 황산벌 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으며 계백장군은 통한을 품고 이곳에
묻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450여년 경의 일이다. 계백장군 묘는 장렬하게 전사한 계백장군의 충절어린 의로운
죽음을 보고 백제 유민들이 장군의 시신을 거두어 은밀하게 가매장 한 것이었다. 조선 숙종 6년(1680)에는 충곡서원이
건립되었는데, 계백장군 위패를 주향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왔다. 지금은 계백장군이 잠들어 있는 묘역을 중심으로
성역화사업이 진행중이며 계백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장사에서 매년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또한 백제군사박물관이 개관되어
장군의 충의정신을 기리는 역사 문화 교육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산길 끝에 암자가 있듯 명산에는 대찰이 있기 마련이다. 쌍계사 또한 대둔산 줄기의
불명산 기슭에 숨어있는 사찰이다. 절을 애워싼 산세가 범상치 않은 곳에 위치한 쌍계사는 인적은 없고, 산새 소리와
풍경소리만이 서로의 음을 조절하며 파장을 즐길 뿐이다. 특히 쌍계사는 대웅전의 꽂살무늬 창살로 유명한데 다가갈수록
고풍스런 정교함에 소리 없는 탄성이 가슴에서 울린다. 꽃무늬 창살로 유명한 쌍계사는 건립의 설화부터 신비하다. 먼 옛날
하늘나라 상제는 산수가 수려한 이땅에 절 하나를 짓기로 하고 아들을 내려 보냈다. 상제의 아들은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서 마치 신선이 사는 것 같기도 한 지금의 쌍계사 자리를 택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진귀한 나무를 모아 오도록 해서
그 나무로 절을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은 쌍계사에 다녀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만큼 화려하고 웅장했다.
논산 대전간 국도를 따라 연산사거리를 지나 오르막을 꺾어 내리다 오른쪽으로 마치
한옥의 지붕처럼 길게 뻗은 산이 보이는데 이 산이 바로 천호산이다. 이 곳 천호산 자락에는 태조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지었다는 개태사가 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절이지만 전성기에는 1천여명의 승려가 도량하였고, 8만 9암자를
소속시켰던 고려시대 최대의 호국수호 사찰이다. 현재 진행중인 개태사지 복원 사업이 완료되면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거듭 날
것이다. 병풍처럼 생긴 천호산 아래 하늘의 보호를 받아 자리한 개태사는 연산검문소를 지나 대전 방면으로 1㎞쯤가다보면
우측에 한눈에 들어오는 절이 보인다. 이곳이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꿈을 이루고 하명으로 지었다는 개태사다. 이러한
연유로 개태사는 고려 “대호국사찰”의 기능을 갖고 있었으며, 태조의 영정을 모시는 신전이었다. 대웅전에는 태조왕건이
후백제를 멸하고 마침내 3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조성했다는 삼존석물이 있다. 이 개태사의 삼존석불은 조선시대 이전의
불상 중 걸작에 속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키가 큰 주존불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좌협시불, 우협시불이 있다.
중앙의 본전불은 좌우 230㎝, 앞뒤216㎝ 방대형 대좌 위에 입상으로 되어 있다.
유순한 금강이 흐르고, 아담한 옥녀봉과 채운산이 알맞은 거리를 두고 마주한 사이에
올망졸망 읍내가 보이는 강경! 「택리지」저자 이중환은 일찍이 강경의 풍물과 경치에 빠져 이곳에 살면서 택리지」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달 밝은 보름날 하늘나라 선녀들이 이 산마루에 내려와 경치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맑은 강물에 목욕을
하며 놀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강경에 가거든 젓갈시장을 들러 보고 꼭 옥녀봉에 올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부여에서 유순하게 내려오던 금강이 옥녀봉을 밀어내지 못하고 물줄기가 꺾이어 서해로 나간다. 옥녀봉 정자에서 바라보면
사방이 거칠 것이 없이 훤하다.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오고 부여, 익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논산 8경중
7경이라고 하나 풍류와 멋을 아는 사람은 이곳을 주저없이 1경으로 꼽는 이가 많다. 평야와 강이 조화를 이루고 저멀리
산이 배경처럼 서 있어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이곳에는 강경읍내와 멀리 논산시내, 드넓게 펼쳐진 논산평야와
금강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문의전화 : 041)730-1601
찾아오시는 길 :
연무IC → 당안로 - 5.4km → 계백로 - 1.3km → 옥녀봉
8경_노성산성
노성산에는 노성산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숲이 있고 새가 있고 바람이 있고 그
아래에 산성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산성에는 벌레가 살고 이끼가 살고 이끼가 살고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쉰다. 논산은
산이 많지 않으면서도 산성이 많은 곳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 논산이 풍요로운 고장이라서 예부터 이땅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방어와 공격의 수단으로 산성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가장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노성산성이다. 노성산성은 산 정상부분을 돌로 둘러쌓아 만든 테뫼식 산성이다. 산 지형을
자연스럽게 이용하여 거의 완벽하게 쌓았고 동쪽면, 북쪽면, 서쪽면은 돌을 네모 모양으로 다듬어 쌓았다.
「신증둥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성 둘레는 590m, 높이 2.4m이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는 장수의 지휘대로
보이는 터(장대지)가 있으며 동쪽벽으로 조금 내려오면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로 보이는 곳이 있다. 성 안에는 4개의
우물이 있는데 지금도 사용하고 있고 토기, 기와같은 여러 유물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연산에 있는 황산성과 함께
백제와 신라가 서로 마주했던 마지막 방어지에 해당하는 산성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사용한 주요
방어지역이었던 곳이다.
내장산은 원래 본사 영은사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이라고 불리었으나 산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하여 내장산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지명도 내장동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정읍시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내장산은 순창군과 경계를 이루는 해발 600~700m급의 기암괴석이 말발굽의 능선을 그리고 있다. [호남의 금강]이라
불리기도 하는 내장산은 예로부터 조선8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 남원 지리산,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변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지리산은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으로서
예로 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의 하나로 민족적 숭앙을 받아 온 민족 신앙의 영지였다. 지리산의 영봉인
천왕봉에는 1,000여년 전에 성모사란 사당이 세워져 성모석상이 봉안되었으며, 노고단에는 신라시대부터 선도성모를 모시는
남악사가 있었다. 반야봉, 종석대,영신대, 노고단과 같은 이름들도 신앙을 상징한다.
여수시 수정동에 위치한 오동도는 여수의 상징인 섬이다. 한려 해상국립 공원의
시작점이기도한 오동도는 1933년 일본 강점기때 신항 개발을 위해 길이 768m의 긴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되어 섬 아닌
섬이 되었고, 60년대 후반부터 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특히 오동도에
서식하는 동백은 다른 지역에서 봄에 피는 춘백과는 다르게 이르면 11월경부터 피기 시작해 이듬해 4월까지 온 섬을 붉게
물들이는 동백으로 개화 절정기에는 마치 섬 자체가 하나의 동백꽃으로 보이기도 한다